안녕하세요! 좋은 이웃교회의 개척사역자 김충성 목사입니다.
이곳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얼마전 만났던 어떤 선배 목사님이 아무 지원없이 개척을 시작하는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무모하게 여겨지는 개척사역을 애틀랜타 북쪽 한인 이민 공동체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되기까지 제 삶과 신앙의 긴 여정 속에서
주님이 이곳까지 인도 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장배경)
저희 아버님(김학복 목사)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늦게 신학을 하시고
영락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한경직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한 다음날 충북 음성군으로 내려가 맹동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저는 그곳 초가집 교회사택에서 1964년에 태어나 생애의 몇해를 보냈습니다.
그후 아버님은 청주 성서학원(신학교)의 부원장을 거쳐
서울 대광고등학교의 교목으로 30여년을 봉사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아버님의 평생의 가장 큰 관심은 늘 어린아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리스도인으로 평생 깨끗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2009년 12월 주님의 부름으로 소천하시기 전까지,
말씀으로 전도하시고, 무료 의료봉사로 섬기시고, 복음 때문에 고초도 겪으셨지만,
평생을 깨끗하게 살다 주님께 가신 아버님이 제게는 너무도 귀한 분입니다.
어려서는 따라가기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시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제가 목회의 길에 들어 서서는 십자가을 향해 가는 신앙의 선배와 동역자였습니다.
(신앙과 신학)
그런 아버님을 보고 자라며
복음과 내가 사는 세상, 문화와 역사를 어떻게 신앙의 눈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언제나 제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종교학전공)(B.A)를 선택했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석사과정(M.A.)에서 한국전통종교와 초기 한국 천주교와의 관계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박사과정(Ph.D)에서 한국 초기 개신교와 한국 역사에 관해 공부하던중, 시카고로 오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대학과 같은 캠퍼스에 있는 맥코믹 장로교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가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였던 사무엘 마펫 선교사의 모교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시절 주님의 사역에 헌신했던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고
신학교 목회학 석사 과정(M.Div.)에 입학해서 졸업했습니다.
졸업후 1년 동안 맥코믹 신학교 와 가톨릭 신학교(Catholic Theological Union)에서 개설 되었던
다문화 목회(Multi-Cultural Ministry)란 과목을 두분의 미국 교수님과 함께 강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자 분이셨던,크로드 마리 바버 목사님과 엘레노 도이지 수녀님은
성경의 마리아 마르다 자매처럼,
신학이라는 학문뿐 아니라 삶으로도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 리치몬드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원(Union Presbyterian Seminary)에서
교회사로 박사과정(Ph.D.)을 수료했습니다.
(목회와 안수)
1991 신학교에 입학하고 교육전도사로 시작한 교회 사역은
박사과정 수료이후 전임 전도사로 계속되었고,
7년간의 부목회자로서의 봉사후 동역자와 함께 개척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4년전 애틀랜타로 이주해 중앙장로교회에서 부목회자로 봉사하고,
개척의 소망을 되새기며 사임하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목회자로의 사역이 벌써 20년이 되어 옵니다.
예전에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왜 아직 안수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는 궁색한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학업을 끝내고, 전임 목회자로 오랫동안 봉사하고 안수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마쳤으면서도
안수를 미루어 온 진짜 이유는
모든 사람은 주님앞에서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기독교의 만인 제사장설을 정말로 믿고,
모든 성도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목회자라는 소명을 가지고 봉사하는 교회를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안수받지 않은 목회자로서의 한계와 불이익도 많았지만 함께 사역하는 아름다운 소망이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애틀랜타 중앙장로교회를 마지막으로 기존 교회사역을 마치며 안수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안수가 개인의 자격을 결정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에게 주님이 맡겨 주시고 섬기라 하신 공동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격이나 권리가 아니라 더 잘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제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랜 자기 성찰의 기간을 지나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목사상을 가진
Christian Church (Disciples of Christ) 교단을 선택하고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단의 선택과 그 신학적 배경)
미국 초기(1800년대 초) 역사가운데 교회의 연합과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기치아래
장로교 목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이 교단은 제가 평생 꿈꾸어 왔던 목회에 실질적인 해답을 주었습니다.
제자회는 개혁교회의 전통하에서, 모든 이들은 교회의 사역자라는 만인 제사장설을 실천하며,
교단을 넘어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교회 내부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분명한 책임감을 가진 교단입니다.
이런 제자회의 가치는
혼돈의 시대를 겪고 있는 한국 교회, 특히 이곳의 이민교회에 큰 긍정적인 도전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며, 다른 교단에서 받은 세례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만,
제자회 교단은 기본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인의 침례(세례)를 원칙으로 합니다.
한국장로교회 목사님이셨던 아버님은 저희 네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기도와 신앙으로 양육하지만
세례는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 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은 저에게도 이어져,
장로교회에서 20년동안 사역했지만, 제 딸아이도 유아세례를 받지 않고
15살이 된후 분명한 신앙과 신앙고백후, 지난 부활절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자회 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주님의 성찬이,
이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세례와 교단에 관계없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공식예배에 성찬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매주 성찬을 거행합니다.
주님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천국으로의 초대와 감사. 부활이 함께하는 성찬은 교회의 하나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자회의 신앙은 제게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으시고
청량리 뒷골목에 아프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의 성찬을 나누려 가셨던 아버님의 신앙을 다시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단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사역했던 미국장로교회(PCUSA)는 제자회의 자매교단인 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의 자매교단이며
이 교단들은 개혁교회의 전통아래 목회자의 청빙과 선교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개척사역의 소명과 소망)
한인 이민 사회에서 제자회가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조지아에서 교단의 가치와 신학에 근거해 사역하는 더 많은 한인 제자회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아시아 목회팀과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목회지를 사임하고 새로운 개척의 길로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이제까지 인도하심을 믿고,
이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제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다.
교회의 분열이나 목회자의 현실적 필요에 의한 개척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비전만을 기초로 건강한 교회를 시작하려 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하게 기다리며, 또한 부족한 저를 불러 기도하며
그 사역을 감당하게 하심을 주님께 감사합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중보자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10년 개척교회를 준비하며
조지아에서 김충성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