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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11:03:04)

아침 일찍 고소한 냄새에 끌려 부엌으로 갔더니, 오븐 속에 맛있게 익은 군고구마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실에서 기도하는 아내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고양이 걸음으로 

조용히 두 개의 군고구마와 물을 가지고 이층으로 올라와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까서 호호 거리고 먹다 보니 옛 추억들이 생각납니다.


신나는 여름바닷가의 추억도 좋지만, 늦가을 특히, 겨울에 얽힌 기억들이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추운 날씨를 견디게 해주던 털모자와 벙어리장갑,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털실로 짜 주었던 목도리, 

물론 숯검정을 얼굴에 묻히면서 호호거리며 까먹던 군고구마까지.. 

모두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기억입니다.


중고등부시절로 돌아가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제가 다니던 서울 산정현 교회의 커다란 톱밥 난로입니다. 

유난이 추웠던 그 시절, 겨울동안 교회 지하에 있었던 중고등부 예배실에는 

커다란 난로가 있었고, 연료로는 근처 제재소에서 가져온 톱밥을 사용했습니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주일 예배시간과 토요모임시간, 

얼어있던 손발을 녹이고,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그 난로 곁에서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아직도 옛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만나면 그 톱밥 난로 얘기를 합니다. 

아마,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던, 

추억 속에 난로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겠지요.

모두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 난로 하나면 모두들 따뜻했으니 까요.


그 난로의 기억 속에는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고민했던 어린 날의 삶과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황량한 세월을 지나야하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그 추억은 생각만 해도 새 힘을 얻게 묘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난로 가를 생각하면,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곁에 나타나셔서 작은 모닥불 앞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셨던 예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겨울과 같이 싸늘했을 절망의 시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공포와 자포자기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조용히 다가가셔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던 예수의 동행, 그 함께 하심이 생각납니다.


올 한해는 유난히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긴 겨울을 지나듯 황량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여기저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들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어려운 시간이, 정말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어려움이, 어지러운 세상과 바쁜 생활 속에서 잃어 버렸던 신앙의 본질들,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예수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되 돌아 볼 기회들을 주니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편안할 때 생각하지 못하고 잊어 버렸던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복음이 무엇인가,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고난의 주는 가장 큰 유익중에 하나입니다.


풍요 속에 따뜻함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이 온통 욕망의 불길로 쌓여 있어서, 

주님이 우리 속에 놓아두신 그 복음의 불이 얼마나 밝고 따뜻한 것임을 잊고 사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감사의 계절인 11월,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그 불들을 다시 발견하고, 

그 신앙의 따뜻함으로 이웃과 세상에 다가가서, 그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과 교회가 황량하다고 얘기하기 전에, 

제자들을 찾아 나섰던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따뜻한 불가로 이웃들을 초대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교회가, 아니 복음을 따르는 우리가 그 예수의 따뜻함을 전하는, 

그래서 세상의 얼어붙은 마음들을 녹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 속에 임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끈한 군고구마뿐 아니라, 

창을 통해 비춰주는 햇살이 

옛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 예수의 함께 하심을 생각나게 해서 마음이 푸근한 아침입니다.


군고구마가 생각나시면 저희 집에 오세요. ^^*


샬롬 


군고구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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